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 (문단 편집) ===# 감독의 삶을 투영한 자서전으로서의 특성 #===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년을 장식하는 작품으로서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큰 소재를 구태여 고른 것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자신의 모순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단지 표현하려는 메세지를 담아내는 것이라면 이제껏 그래 왔듯이 가상의 배경이나 판타지적 요소로도 충분하였겠지만, 그 자신의 삶이 녹아있는 당시의 일본이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감성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일제의 악행을 묘사하는 것과 병행하여 작품의 메시지를 담는 것은 일제의 악행이 '''워낙에 무지막지한 탓에''' 자칫 작품의 메시지를 가려버릴 수 있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는 주인공 지로의 성우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같은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로 선정한 것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이 아닌 극장판 등장인물인 지로가 가진 모순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를 비롯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스스로 인정한 모순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호리코시 지로의 태도는 스스로가 꿈에 빠져 있을 뿐,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저 현실을 등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극의 후반에 의사가 된 여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다그친 내용이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 지로의 아내는 폐렴에 의해 병원에서 요양하는 게 의사가 판단하는 올바른 길이지만, 지로는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아내는 그런 지로의 의향에 맞추어 병원 요양 없이 매일 화장하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준 뒤에 떠난다. 마지막에 지로의 꿈에 나타난 아내는 결국 현실에선 죽었음을 암시하는데, 지로가 아내를 곁에서 보려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연출은 아내를 희생시켜 완성했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는 제로센의 비참한 최후와 함께 더욱 비극성을 더한다.) * 다만 이 부분만은 다른 길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게, 그 병원의 요양이라는게 당대 의학기술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 건조한 곳에서 요양하기 위해 미나미알프스 산 속으로 들어가는건 합리적이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침낭에 겨울 야외 취침을 하며 자연치유만을 기대하는게 당대의 폐렴임이 작중에 묘사된다. 최소한 [[설파제]]가 손에 들어와야 다른 결말을 꿈이라도 꿀 수 있다. 그러한 국제 교류를 어렵게 만드는 전쟁의 도구를 지로가 만드는걸 생각하면 실로 역설. 미나미알프스는 6월에도 눈이 남아있을 정도로 추운 지역이라는걸 생각하면 엄청난 체력이 소진되는건 마찬가지다. 통상적인 여성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다. 첫 항결핵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은 1943년에 개발되는 약물이다. * 여기에서부터 역산해보면, 지로가 여러 다른 현실과는 붕 떠 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 꽤 있다. 지로가 타는 나고야행 기차가 선로 위를 걸어 지나가던 사람들을 갈라놓는 부분, 버스가 아닌 고급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도 시민들이 절실한 은행 문제 때문에 길을 가로지르는 인파와 부딪히고, 카스테라를 주려고 하는데 서민 여자애들은 피해버리는 것도 친구에게 위선이라고 지적받는다. 제작 중인 비행기의 연결부품 하나 값이면 그 여자애의 가족이 한 달은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괴리된 위치에서, 지로 스스로는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지만 '''일반 서민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관점에서만 꿈을 좇기에''' 몇몇 현실을 목격하거나 듣고도 그것이 자기 인생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근대 국가에 있을 수 없는 개인 모독'이라는 대사도 다른 사람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달랐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제까지는 개인 모독을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나타낸다. 지로의 붕 뜬 목소리나 멍한 시선 묘사만이 아니라, 아내가 각혈했을 때 외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감이 없는 음악도 지로의 주관을 표현한 것'''으로 보면 이 작품은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않을 뿐, 지로의 태도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행기가 전쟁을 한다는 것도 알고, 그 행위를 파멸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게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는 않았다. 아내도 죽었고 제로센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지로는 여전히 평화로운 음악 속에서 붕 뜬 태도 그대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그래도 살긴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이걸 미야자키가 의도적으로 노린 연출이라면, 안노 히데아키의 감정이 부족한 목소리도 실로 정답. 어찌 보면 지로가 그만큼 작품 초기 시점에 이미 서민층을 벗어나 인텔리의 일원에 편입되었음을 설명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애초에 지로는 아내 나오코 만큼이 아닐뿐이지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한 사람이다. * 호리코시 지로가 비행기를 좋아해 제로센을 만들었지만 그 제로센이 만들어낸 결과에는 부정적인 측면(전쟁 등)도 있었고 호리코시 지로 자신도 만족하지 못한 결과였다는 것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업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에도 대입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나우시카 등을 만들었지만 그 결과에는 부정적인 측면(우익 혹은 오타쿠 혹은 비도덕적인 기업의 배를 불리는 산업구조 등)도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만족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풀면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대입할 수 있다. 서양의 제작자를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도, 외국의 기존 완성품을 참고했기에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기에 제로센을 미화했다는 주장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족적 혹은 업으로 삼은 애니메이션 등을 미화했다는 주장으로 이어져 틀린 말이 된다. 작품 외적으로 정보를 얻고 감상해야 하기에 그만큼 대중성은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스즈키 토시오가 '비행기, 무기 좋아하면서 반전을 부르짖는 모순에 대해서 이제 응답할 때도 되지 않았수?'라고 하면서 추천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맥락을 알아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이야기다. 부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제로센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부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족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적어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현대 일본 혹은 오타쿠 혹은 애니메이션이나 그 산업 중의 어느 부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발언은 아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작품 활동이 기여한 부분이 있고, 그런 측면에 대한 비판이 호리코시 지로의 제로센 제작에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과거가 낭만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이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과거 인생과 겹쳐진 주관적인 시점에서 주변을 타인과는 동떨어지게 본 측면이 있음을 그렸기 때문이고, 그런 시각이 자신의 아내를 죽게 했다는 것까지 이어가면 그에 대한 비판 역시 이 작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견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대의 '이면'이 있음은 작품 내에 다양하게 암시되었다. 호리코시 지로는 그걸 아주 모르진 않았음에도 결국 아름다워 보이는 꿈만을 쫓아갔을 뿐이다. 다만 그것을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비평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메시지가 굉장히 흐려지고,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쫓아가는걸 미화하게 되는 감각이 남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